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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무어 기타를 울게 만들었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게리무어는 보통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슬픈 기타를 치는 사나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의 곡을 들어보면 왜 그런지 느낌이 온다.

 

게리무어 기타를 울게 만들었던 기타리스트 

 

게리무어는 워낙 세계적인 기타리스트인 이유로 일반 사람들도 아는 사람은 알 수도 있다.

 

기타 연주 중인 게리무어


1. 게리무어 소개

블루스 삘이 충만한 대표곡 파리지엔느 워킹 듣기 (클릭)

게리무어는 1952년 북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세계적인 뮤지션 대부분이 그렇듯 게리무어 역시 어린시절 음악계에 종사하는 아버지 덕분에 기타를 일찍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가정환경이 역시 유아기 시절에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게리무어는 그당시 기타 인스투르먼트를 흥행시켰던 행크마빈의 연주를 보면서 기타리스트의 꿈을 키워왔다고 한다. 그리고 16살이 되던해 '스키드로우'란 하드락밴드를 결성하면서 본격적으로 기타리스트로서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2. 밴드결성 스키드로우

블루스 감성이 녹아 있는 느낌은 어떤 연주일까? (보기)


게리무어는 밴드를 결성하고 하드락과 메탈을 즐겨 연주했지만 그 연주 속에는 블루스삘이 녹아있었고 이게 나중에 게리무어 음악관에 연결된다고 볼 수 있었다.

스키드로우는 조촐하게 시작했지만 점차 실력을 인정받게 되고 특히 게리무어는 하드락 기타리스트로서의 인지도를 높이고 실력이 뛰어난 기타리스트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인지도를 어느정도 얻자 게리무어는 스키드로우에서 탈퇴하고 직접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다.

3. 대박곡의 탄생

자신이 직접 만든 밴드 활동을 하면서 여기저기서 우리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되어달라는 러브콜이 날라오자 게리무어는 '씬 리지', '콜로세움II'등등 여러 밴드를 옮겨다니며 자신의 경력을 쌓고 앨범을 내고 활동하는등 자신의 음악관을 점차 넓혀갔다.

그렇게 활동을 하다가 1979년 게리무어의 인생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앨범인 'Back on the streets'를 내놓게 되는데 이게 왜 인생의 전환점이 되냐면 하드락 기타리스트로서 인정받음에도 불구하고 블루스 기타리스트로 전향하게 되는 앨범이기도 하고 앨범 수록곡중 'Parisienne Walkways'란 곡이 대박을 쳐버렸다.

 

3. 성공가도 안착


게리무어 하면 떠오르는 대표곡 Parisienne Walkways 게리무어만이 낼 수 있는 벤딩비브라토가 돋보이는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앨범의 대박을 이어 다음 앨범도 대박이 터져버리고 게리무어는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로 발돋음 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4년 앨범 'Victims of the Future'에 우리에겐 특별한 곡인 'Murder in the skies' 란 곡이 실려있어 이 곡이 왜 특별하냐면 1983년 터졌던 KAL 007 여객기 격추사건을 노래한 곡이었다.

게리무어는 월드투어 중 2010년에 처음으로 내한했는데 이때 내한공연 중 천안함 사건을 추모하는 공연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3. 사망


게리무어는 투어를 끝내고 2011년 2월 6일 스페인에서 휴가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한다.

전설로 남아버린 기타리스트가 되버린 것. 이때 사망 소식을 들은 기타리스트들과 팬들은 엄청 슬픔에 빠졌었다고 한다. 마치 스티브 잡스가 죽었을때 앱등이들이 엄청 슬퍼한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