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사 시절 전두환을 보필했던 두 허씨, 허화평과 허삼수 중에서 특히 허화평에 대해서는 대단히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또다른 허씨, 허삼수란 어떤 인물이었고 그의 유년시절은 어땠을까?
허삼수 5공시절 실세였던 그의 유년시절은 어땠을까?
의협심이 강했던 허삼수는 유년시절에서도 그 성격을 쌓아왔었다.
1. 출생
대부분의 인터넷 웹사이트에서는 허삼수가 부산에서 태어났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부모님이 강제징용 당해 일본에 끌려갔다가 거기서 눌러살게 되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소학교(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일본에서 지내다가 부산으로 이주한 것이다.
한국말에 서툴렀던 데다가 가업을 도와야 했기 때문에 허삼수는 또래들보다 훨씬 늦은 나이에 학교에 다시 가게 되었다고 한다.
2. 육사입학
그러나 늦게 시작한 사람이 맘잡고 공부하면 무섭다고 허삼수는 중고등학교 때 우수한 성적을 계속 유지하더니 당시 경쟁률이 37대1이었다는 육사에 당당히 합격했다. 육사 17기였다.
그리고 그는 자기보다 한살 어리지만 같은 17기인 청년을 만나 의기투합한다. 그가 바로 허화평이다.
그는 정의감이 넘치는 청소년이었다. 특히 그는 자유당 정권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박정희 소장의 군사혁명을 열렬히 지지했다.
박정희 소장의 군사혁명에 심취한 허삼수는 '세상을 올바르게 바꾸자면 군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고 그래서 육사 진학을 결심한 것이다.
3. 육사시절 허삼수
유난히 의협심이 강해서일까, 허삼수는 육사 17기 중에서도 매우 돋보이는 존재였다.
5공 건설 때부터 워낙 허화평이 왕성한 활동을 하다보니 육사 17기의 리더가 허화평이라고 알려졌지만 육사17기의 증언을 들어보면 실제로는 허삼수가 리더였다고 한다.
사실 허화평은 그 성격을 봐도 알 수 있지만 말빨이 강하고 논리는 정연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있다. 반면 허삼수는 통이 큰 인물인데다가 자신에 대한 수양도 대단했다.
허삼수 본인이 자신의 육사 시절에 대해서 공부와 유도 밖에 몰랐다고 할 정도였다. 육사 시절 시작한 유도는 졸업할 때에는 유도 2단을 땄을 정도였다.
4. 육사 졸업 후
육사 졸업 후, 워낙 두뇌가 우수하고 공부를 잘했던 허화평은 육군대학교로 진학하여 작전참모의 길을 걸었고 허삼수는 방첩대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이 당시 허삼수가 모시던 상관이 바로 윤필용이었다. 허삼수에게 좋은 인상을 받은 윤필용은 기회 있을 때마다 허삼수를 적극 추천했고 그 덕분에 허삼수는 월남전 한국측 방첩장교로 월남에 파견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미군과 월남, 그리고 한국군의 의견을 조율하는 고급장교로서 중책을 맡았다. (허삼수는 영어, 일본어, 베트남어를 구사할 수 있음)
베트콩에게 밀리는 월남을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허삼수는 "부패는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5공 건설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