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상 최초의 평민출신 한나라 황제는 한고조유방이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사회구조 계급을 넘으려면 힘든데 그 때 당시 평민출신이 황제가 되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전후무후한 사건이었다.
한고조유방 최초 평민출신 황제 인생역전 중국황제까지
1. 젊은시절
그는 패현이라는 지방출신인데 아버지는 태공이었다고 한다. 태공은 무슨 작위나 벼슬이 아니라 동네아저씨라는 의미라고 한다.
젊은날의 유방은 일도 안하고 백수생활을 했었는데 백수주제에 술과 도박을 좋아하고 여자를 엄청 밝혔다고한다.
가진건 없지만 허풍은 남달랐는데 여공이라는 인물이 패현으로 와서 살게되었는데 워낙 명성이 있는 인물이라 패현의 호걸과 유력인사들이 여공을 만나기 위해 사례금을 받쳤다고한다.
패현의 이름난 갓수인 유방은 땡전한푼없으면서 종이에 하례금 일만이라고 쓰고 여공을 만났는데 유방의 관상을 본 여공이 심상치않는 인물로 여겨 자신의 딸 여치(훗날 여후)를 아내로 주겠다고한다.
2. 인생피는시기가 온다
이후 진승, 오광의 난이 터지고 나라가 아수라장으로 흘러가게 되고 그동안 진나라의 눌려있던 열국의 사람들이 봉기를 일으키는데 유방도 패현에서 소하 조참 번쾌등과 거병을 해 유방도 일약 군벌세력으로 떠오르게 된다.
당시 군벌중 가장 큰 세력이 초나라 명장 항연의 후손인 항량이 초나라 왕실의 후예 초의제를 데려와 옹립하게 되는데 유방도 초의제의 깃발아래 들어가게된다.
이후 초의제의 명에 따라 유방은 진나라 수도인 함양으로 진격하고 가장 먼저 함양에 입성한 군웅이 되었다. 이래저래 아방궁에서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지만 항우가 거록대전에서 대승을 거두고 함양으로 오는중이란 소식을 듣고 싸웠다 하면 이기는 항우 명성에 지레 겁을 먹고 항복을 해버렸다.
항우는 함양에 입성하자 진나라에 대한 증오심이 폭발하게 되었다. 대량학살극을 벌이고 유방은 언제죽을지 모르는 신세에 처해서 벌벌 떨고만 있었다.
범증은 항우에게 유방을 죽이라고 수차례 권하지만 항우는 자신의 적수가 아니라고 생각해 유방을 죽이지않았다. 홍문연에서 항우는 분봉을 하고 유방을 한왕에 봉해 서쪽끝 파촉으로 보내버렸다.
중국대륙 구석에 쳐박혀버린 한군은 하루하루 절망감에 찌들어 있었는데 소하라는 인물이 한신을 대장군에 천거하면서 유방도 용기를 얻게되고 세력을 재정비해 반격에 나서니 그 유명한 초한대전의 막이 오르게된다.
3. 초한대전의 개막
정치빼고 못하는게 없던 항우는 함얌에서 동쪽인 팽성으로 천도하게 되는데 함양과 관중을 아우르는 지역을 삼진이라 하여 장한, 동예, 사마흔을 삼진왕으로 봉해 그지역을 지키게 했다.
한신의 통솔아래 한군은 삼진을 정벌하고 동쪽으로 진군 위왕 위표와 은왕 사마앙도 항복시키고 무려 56만이라는 제후연합군을 구성하고 팽성으로 진군하지만 항우는 3만의 적은 군사로 56만의 군대를 승리해 버린다.
박살난 유방은 형양에서 우주방어 모드로 항우의 공격에 맞서고 한신은 따로 병력을 통솔해 북방 제후국을 정복 북방을 정벌한 제왕 한신의 대군이 남하하면서 해하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계속 소모전만 했던 항우군은 군세가 떨어져있었고 유방, 팽월, 특히 한신의 압도적인 군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패하고 죽고만다.
항우를 제압한 유방은 한신의 병권을 회수하고 중국을 통일해 유방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그이전에 진승이라던지 칭제했던 인물들이 있긴 하지만 평민 신분으로 황제 다운 황제는 유방이 처음이었다. 남의 덕에 황제가 됐다 숙청을 많이했다 비하도 많이 당하지만 그래도 훗날 빽없이 맨손으로 일어난 군웅들은 모두 한고조를 본받고 동경했다고 한다. 명태조 주원장도 한고조를 제일 존경했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