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는 역사학적으로 학자들이 지금까지 미스테리로 생각하는 동양의 불가사의한 시대들 중 하나이다. 그 이유인 즉슨, 송나라는 싸움이 낫다면 패퇴하면서 야만족들에게 조금씩 영토를 빼앗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송나라 군사력은 약했지만 경제력은 강했었던 국가
하지만 신기하게도 송나라의 인구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단일 국가상으로 1억을 돌파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2배 수준으로 사회적인 인프라가 약했던 당시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따라서, 많은 인구수가 뒷받침됨에 따라 군대도 모으면 100만 수준으로 동원할 수 있었다고 본다.
1. 송나라의 숙적 요와 금
당시 송나라의 숙적인 요와 금의 인구는 100~200만명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군대도 6에서 10만 수준으로 송나라에 비하면 차이가 많이 났었다. 그런데도 송나라는 싸웠다 하면 승리 보다 패배가 더 많았다고 한다.
2. 당시 송나라의 경제상황
그렇다면 당시 송나라는 인구수만 많은 허울뿐인 국가였었느냐?라고 반문을 할 수가 있다. 답은 아니다. 송나라는 오히려 산업혁명 직전이라고 할만큼 경제가 발달한 나라였었다. 최근의 연구 결과 송나라의 1인당 GDP가 1200~1500달러 사이였다고 추산되고 있지. 산업혁명 초인 1750년 영국의 1인당 GDP가 1,710 달러, 1800년엔 2,080 달러 란걸 알면 결코 적지 않은 수치이다.
1078년 송나라의 철강 생산량은 12만5000t이었는데, 이는 1788년 영국 산업혁명 당시 철 생산량을 약간 밑도는 수준이고 석탄의 소비량도 산업혁명 초기의 영국과 맞먹는다고 본다. 또한 기술력 또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화포와 화약무기들을 보유한 국가였으며 정교한 기계장치들을 응용하는 나라였다고한다.
3. 높은 경제력을 가진 송나라는 왜 군사력이 약했을까?
송나라가 군사력이 약했던 이유는 태생부터 군사력을 억제해서라고 보고 있다. 송나라의 전 왕조인 당나라는 당시 세계 제일의 군사력을 자랑했지만 절도사 하나 하나가 권한이 막강했었다. 삼국지로 치면 각 지방의 영주라고 볼 수 있다. 이로 말미암아 결국 당나라는 절도사의 난으로 망하고 새로 들어선 송은 모든 군사력을 중앙으로 집중시키고 사병을 육성 못하게 했었다.
당시 장군들에겐 엄청난 견제와 병권도 제대로 안줬다고 한다. 이로인해 싸움에는 매번 참패 했었고나온게 바로 성리학이다. 이렇게 학문주의에 빠진 송나라는 결국 몽골에게 침략을 당하게 되고 멸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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